여러분,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천재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를 아시나요!
혹, 꽃보다 할배를 시청하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아마도 기억나실지 모르겠어요.
그 가우디가 사망전까지 전부를 바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이제 5년 후면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는 1852년 6월 25일, 지중해 연안 카탈루냐 지방에서 구리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건축에 뜻이 있었던 가우디는 건축 공부를 위해 바르셀로나 대학에 입학합니다.
자연에서 끊임없는 영감을 받으며 모티브로 삼았고, 곡선의 디자인이 특이한 감각을 보였으며,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도 남달랐던 가우디.
건축학을 공부하며 교수님들의 수많은 프로젝트에 제도사 역할로 참여하던 가우디는 레알 광장(Plaza Real)과 플라데팔라우(Pla de Palau)의 가로등으로 주목을 받으며, 가로등외의 다양한 건축, 창문 디자인, 영화관, 바, 레스토랑 등의 협업 작품을 통해서 건축가로서의 영향을 넓혀갑니다.
이후, 가우디의 교수님을 통해 카탈루냐 지역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을 만남으로, 구엘은 가우디의 평생의 후원자가 됩니다. 가우디는 그런 구엘의 후원아래 아낌없이 역량을 발휘해 구엘 공원(Park Güell), 구엘 저택(Palau Güell)과 같은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죠.
구엘 공원은 원래 영국풍의 전원 주택 단지 조성이 그 목적이었으나 사업은 실패하고 현재 바르셀로나의 시 소유로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개방되고 있다. 가우디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이 공원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장소로 타일벤치, 도마뱀 분수 등등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문화 유산 중 하나이자,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가우디의 첫 번째 대작이기도 한 구엘 저택은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인 구엘의 의뢰로 지은 도시형 저택이다.
구엘 가문을 상징하는 입구에 자리잡은 독수리 모양의 철제장식과 옥상의 굴뚝, 그리고 건물 안쪽에 천장까지 뚫려있는 홀은 구엘 저택의 큰 특징들이다.
또한 그 시점 바로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La Sagrada Familia) 작업을 제안 받습니다. 그때가 1883년.
스페인어로 '성스러운 가족'을 뜻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원래 바로셀로나의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르의 설계로 시작되었는데 1년만에 가우디로 수석 건축가가 교체되면서, 성당의 모습도 전통적 고딕양식에서 고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이 결합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세 개의 파사드를 통해 신약의 내용이 성당의 외부에 표현됐는데, 마치 건축물에 성경책을 입혀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동쪽의 파사드 '그리스도의 탄생', 가우디의 제자가 이어받아 진행해오다 스페인 내전으로 파괴된 서쪽의 파사드 '그리스도의 수난'은 후대의 건축가들로 1954년 다시 착공되어 197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표현한 남쪽의 파사드 '그리스도의 영광'은 2002년 착공해 아직도 공사 중이죠.
더딘 성당 건설은 유난히도 난이도가 높은 가우디의 독특한 구조와 자금 조달 문제가 있던 까닭이었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사그라마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에 착공된 지 137년 만에 즉, 2019년에 시의 공식 건축허가를 받았다고도 하죠.
바르셀로나 시당국은 2026년까지 유효한 건축 허가증을 발급해주었고, 성당 건축 위원회에서는 그 동안의 수수료인 460만 유로(약 61억 4천만원)정도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완성된 성당은 총높이 172.5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인정받게 됩니다.
총공사비는 대략 3억 7천 400만유로, 우리돈 4천994억원!!!!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하루 평균 1만 2천 명, 연간 450만 명이 찾는 스페인 최고의 관광명소이기에 이런 공사비를 감당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듭니다.
그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의 사망 100주기인 2026년을 완성 목표로 공사중이고, 이제 5년 후면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겠네요!
1912년부터 19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의 코르테스 거리에서 남루한 행색으로 길을 걷다 전차에 치여 사망할 때까지 가우디는 개인적인 삶은 모두 포기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 온 심혈을 기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차에 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을때도 그의 너무나 초라한 행색에 그의 사망직전까지도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니..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살던 가우디는 그의 모든 정열을 쏟아부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에 비로서 평온을 찾았습니다.
가우디가 카탈루냐 지역에 큰 돈을 번 부르주아 계층을 만나면서 가우디의 모더니즘한 예술성이 꽃을 피우던 시기에 건축된 카사바트요(Casa Batlló, 1904-1906)나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대작 카사밀라(Casa Milà, 1906-1912)도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많는 건축물들이죠.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에밀리오 살라(Emilio Sala)가 최초 건축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사바트요(Casa Batlló, 1904-1906)는 최고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상상력이 한데 모아진 가우디 대표 건축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원래 카사바트요 바로 왼쪽 집이 카사 아마트예르(Casa Amatller)인데, 아마트예르씨가 당대 건축 거장으로 꼽히는 호세프 푸이그 이 카다팔츠크에 의뢰해 멋진 집을 짓자, 바르셀로나의 사업가인 바트요씨가 이 집보다 더 예쁘고 독특한 집을 지어주기를 의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카사바트요(Casa Batlló)란 일화는 유명하죠.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현재는 춥파춥스 회사의 소유물이라고 합니다.
용의 비늘 모양과 빛깔의 지붕과, 해골 모양의 테라스, 그리고 뼈를 형상화한 기둥들이 마치 중세의 어느 이야기를 담아 놓은 듯한 느낌을 주네요.
카사밀라(Casa Milà)는 페레 밀라(Pere Milà)라는 사업가의 의뢰를 받아 건축된 건물입니다.
가우디의 팬이기도 한 페레 밀라(Pere Milà)가 '카사 바요트'를 보고 가족들과 세를 내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의뢰한 연립주택이라고 하죠.
건물주의 이름을 따 카사밀라(Casa Milà)라고 불리우지만 건물의 외관이 마치 커다란 암벽에서 돌을 캐내는 채석장 같다고 하여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완공 당시에는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은 독특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됐다고 해요.
시대보다 앞서간 감각이 지금 이렇게 빛을 발할지 그 당시 사람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특히, 카사밀라(Casa Milà) 옥상에 있는 굴뚝과 환기구는 후에 스타워즈를 연출한 조지 루카스의 눈에들어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의 모습을 착안하는데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합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이 곳 바르셀로나로 가우디 건축기행을 상상하며 오늘은 이만 마칠께요.
정말이지 화창했던 오늘 모두들 행복한 일요일 저녁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
♥따뜻한 공감 하나, 댓글 하나에 글쓴이는 햄 볶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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