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안동 수졸당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어요.
수졸당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이 그 첫번째 방문지였답니다!
바로 저 아래에 이육사문학관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와 뒤를 바라보니.. 와.........
마치 하늘과 산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이런 곳에서 이육사 시인이 성장하셨겠구나를 생각해보니.. 실로 어렸을적 학교다닐때 배웠던 <광야>라는 시가 이해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문학관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이 곳이 경상북도 제 1호 공립 문학관이더라고요.
또한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 창조아트홀에서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 이육사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있더라고요.
다양한 인문 주제를 가지고 여러 전문가 강사분들과 함께 현장답사도 하면서 배우는 프로그램 같아요. 거리만 가깝다면 정말 꼭 참석해보고 싶은 바램..
아쉽게도 월요일에 갔는데 어쩌나.. 일주일중 유일한 휴무일에 맞춰간거 있죠..!
아쉽게도 문학관 안으로의 관람은 포기하고 주변이라도 산책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문학관 안내판을 보다가 이육사 묘소를 들러 보기로 했어요.
이육사시인은 일제 강점기시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평생 강인한 민족정신으로 치열하게 독립운동에 매진하셨지요.
몸이 쇠약해진 후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펜으로 총칼을 대신해 일제와 싸웠던 항일투사였습니다.
이육사문학관에서 100미터쯤 올라가자 나타난 이육사 묘소!
이육사 선생님의 유해는 그동안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해 계시다가 2023년 4월 5일에 이육사문학관과 가까운 이곳으로 모셨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잔디가 아직 자리잡기 전이더라고요.
묘소앞의 태극기만이 그의 투철했던 민족정신과 독립의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사실 이육사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14대 손이라고 해요.
1904년 5월 18일 이곳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6형제 가운데 둘째아들로 태어나셨다고 하죠. 호적 이름은 원록, 그리고 본인의 의지로 사용한 첫번째 이름 원삼과 활.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이육사란 이름은 그의 죄수번호인 264에서 왔는데 조선의 불행한 역사를 뒤엎겠다는 의지로 죽일 죽(戮) 역사 사(史)를 사용하기도 했다지요.
이 안동지방은 1894년 근왕창의를 내걸고 갑오의병으로 봉기해 독립운동의 첫 장을 연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바탕에 성장한 이육사는 분명 강인한 민족정신을 키우며 자라났을테죠.
이런 이육사는 1927년 첫 옥살이를 시작으로 17번의 감옥생활, 1930년의 첫시집 발표 그리고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의 옥사로 그의 불꽃같은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감했습니다..
참으로 해방이 코앞이었는데.. 너무나 아쉽고 또 아쉽다. 큰 별이셨던 이육사. 그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짐하게되네요.
이육사 시인의 전신 조각상을 보며 그의 풋풋했던 시절을 상상해봅니다. 문학관도 방문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움을 안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도착한 이 곳은 바로 도산서원! 지도에서 보면 도산서원 앞에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볼 수가 있네요. 서원안에서 가끔 공부에 지친 선비들이 바라봤을 저 낙동강의 모습이 어떨지... 이제 곧 감상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도산서원은 2019년 소수서원, 병산서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죠. 이들 서원들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면했던 47개 서원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해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유유자적 안으로 걸어가 봅니다.
얼마쯤 들어가다보니 한자가 쓰인 기념석?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띠고 계신 한 어르신께서 저희에게 도산서원 설명을 듣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완전 긍정의 예스를 말씀드렸습니다!!
단순히 구경만 하고 가기보다는 전문 해설 도우미분의 설명을 들으면 더욱더 기억에도 오래남고 공부도 될 것 같더라고요.
이 기념비에 쓰인 글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추로지향'이란 의미로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1980년 공자의 77대손인 쿵더청 박사가 이 곳 안동의 도산서원을 방문하여 '추로지향'이란 휘호를 남겼는데, 도산서원이야말로 진정한 예와 학문이 있는 곳임을 인정하는 말이라고 한대요.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이내 해설사님을 졸졸졸 따라 다닙니다. 도산서원의 전체적인 지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고요.
천광운영대에 대한 해설사님의 말씀도 듣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산책을 하던 곳이라고 해요.
지금도 이처럼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멋진 경치였을까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서 어떤 진리와 깨달음을 깨달으며 몸과 마음을 수양하셨을지.. 참으로 감탄이 나옵니다.
멀리 시사단이 보이네요. 안동댐이 생기고 난 후 원위치에서 10m 높이 정도의 돌축대를 쌓아올린 뒤에 옮겨 지어졌다고 해요.
시사단은 조선시대 특별 과거시험을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비각이 있는 곳이래요.
안동댐 수위가 낮아져 잠수교가 드러나면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하네요.
강 한가운데 떠있는 시사단이 주변 배경과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한국화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느티나무가 뭔가 이상하게 줄기부터 땅에 심어져 있는 것 같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전보다 지대가 조금 더 올라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네요.
저희가 도산서원을 방문했을땐 목판인출체험이란 이벤트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럼 이제 도산서원 안으로 들어가 시간여행을 떠나볼까요!
다음 포스팅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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